
발렌시아에서 제대로 된 기회를 받지 못하며 마음고생 중인 이강인이 파울루 벤투호에선 전술 실험의 희생양이 됐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25일 오후 일본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 대표팀과 친선전에서 전반전 2골, 후반전 1골을 내주며 0-3으로 패배했다.
한국은 이날 경기를 포함해 80차례 일본을 상대해 42승 23무 15패를 기록했다. 여전히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한일전 역사에 남을 참패를 당했다. 이전까지 일본과 친선전 최악 패배는 1974년 도쿄서 열린 한일정기전 1-4 패였다.
한국은 전반 16분 야마네 미키에 선제골, 전반 27분 가마다 다이치에 추가골을 내줬다. 선수를 대거 교체한 후반에도 일본의 흐름이었다. 후반 37분엔 엔도 와타루에 쐐기골을 허용했다.
이번 경기에서 벤투 감독이 매서운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이강인 활용법에 있었다. 이강인은 4-2-3-1 전형에서 최전방에 자리했다. 최전방에 위치해 수비진을 끌어내고, 빈틈을 만드는 일명 ‘가짜 9번’, ‘제로톱’의 역할을 맡았다.
제로톱은 이강인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주축으로 활약하는 요시다 마야(삼프도리아), 도미야스 다케히로(볼로냐)로 구성된 일본 센터백 듀오를 상대하는 것은 이강인에게 버거워보였다. 중원에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후방에서 롱패스가 계속되자 이강인의 고립은 심화됐다.
벤투 감독 역시 ‘이강인 제로톱’ 전략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수비 라인 균열을 노렸다. 상대 수비가 압박할 때 포지션에서 끌어내리고 빈틈으로 윙어와 2선 공격수들이 침투하는 움직임을 원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내 “이강인 제로톱 전술은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다"라고 덧붙였다.

후반전 들어 이강인이 자신의 진가를 보여줄 여지도 없었다. 이정협(경남FC)과 교체되어 벤치로 물러났다.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탈압박과 패스 능력을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많은 축구 팬들은 이강인이 국가대표팀에서 만큼은 자신의 재능을 펼치길 원했다. 이번 시즌 발렌시아에서 상당한 출전 기회를 받으면서도 ‘교체 아웃 1순위’라는 상처를 받았다. 특히 레반테와 경기에서 후반 18분 가장 먼저 교체 아웃된 후 중계 카메라에 이강인이 좌절하고, 울음을 보이는 장면이 포착된 바 있다.
이강인은 바로 다음 라운드인 그라나다전에서 선발 제외됐다. 교체 투입되어 경기를 치른 후 곧장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이동했다. 이동거리만 해도 어림 잡아 2만 km에 달한다. 이강인은 벤투 감독의 무리한 실험 탓에 제 기량을 펼치지도 못한 채 발렌시아로 복귀해야 한다.